시나리오 총평 (최춘웅)
새로운 청와대를 설계하기에 앞서 대상지 선정과 장소의 성격, 그리고 용도 등의 기획을 통해 제안하고자 하는 청와대의 정체성을 우선 정립하도록 유도하는 것이1차 과제물의 목적이었다. 그림의 첫 획을 긋기에 앞서 자료와 문헌을 깊이 있게 조사하고 역사적 지식을 습득하여 설계의 근거를 마련하고, 이미지보다 먼저 글을 통해 사고의 틀을 마련하는 것은 본 공모전이 추구하는 결과물이 시각적인 화려함보다 깊이 있고 신선한 개념적 제안들을 찾고자 하기 때문이다. 공모전의 형식 또한 상세한 프로그램을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대신 참가자들이 새로운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것으로, 기획 능력이 평가의 핵심적인 대상으로 간주하며, 그림보다 글이 중요하게 간주한다. 물론 글로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시각, 조형적 아이디어들이 2차 결과물에서 추가된다면 글과 이미지의 상호보완을 통해 전체적인 의미가 완성될 것이다.
1차 과제물로 제출된 글들을 읽고 깨달은 한 가지 사실은 현재의 청와대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청와대를 직접 방문해 보았거나 경험한 적이 없고, 바깥에서라도 자세히 바라본 적이 없는 낯선 장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이나 방송을 통해 보는 이미지들 또한 어떤 감동을 주었거나 우리나라에 대한 긍지를 자극하기에 부족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거쳐 간 대통령들의 공유공간이라는 역사적 의미도 중요하지 않고, 장소에 대한 연민도 없는 것 같다. 건축 유산으로서 가치에 대한 공감도 없고, 하루빨리 철거되는 것을 보는 것이 모두의 희망인 것 같다. 몇 명의 참가자들은 현 청와대에 대한 역사적 자료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단순하게 역사적 사실들을 반복하는 대신 새로운 제안의 근거로 삼았지만, 현재의 청와대를 비판하기 위한 수단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공식화된 역사적 사실 대신 일상의 기억이나 회상을 통한 기록들은 찾을 수 없었다. 새로운 청와대가 “내일의 역사를 쌓아가는 공간”이라면 그동안 축적된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좋을까?
새로운 청와대가 단일 건물이 아닌 <마을> 또는 <동네>라는 것은 공모전에서 제시하는 몇 안 되는 요구사항 중에 하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익숙한, 각자가 살아온 마을을 선택하는 대신 많은 참가자가 광장, 특히 광화문 광장이나, 기차역, 교량, 시장 등 특정한 장소나 시설물을 선정한 경우가 많았다. 특이한 장소의 선정을 통해 청와대의 새로운 성격을 쉽게 부각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충격적이거나 강한 아이디어를 통한 독창성의 표현은 왠지 대기업 취업 면접을 대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반면에 섬세하고, 잔잔한 아이디어들이 오히려 돋보였는데 <일상>이나 <친근감>이라는 단어 대신 <우물>이나 <살롱> 등 친숙하지만 일상적인 장소를 언급하는 것이 좋았다.
많은 글에서 공통으로 언급된 몇 개의 단어들은 건축적인 연관성이 적거나, 특정한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많이 남용된 ‘소통’이라는 단어는 지극히 보편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아무런 건축/도시적 의미로 연계되지 않았고, 새로운 청와대는 소통을 위해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것도 비판 없이 모두에게 받아들여진 듯했다. 대부분의 글이 헌법의 같은 부분을 반복적으로 인용했고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 또는 타당성 또한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진 듯했다. 공모전의 제목에 사용된 단어들—우리, 마을, 두 가지는 필요 이상으로 분석되거나 큰 의미가 부여된듯 했다. 우리와 마을이라는 단어 속에 공유와 일상성이라는 맥락이 담겨 있는 것은 물론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단어나 개념도 당연하게 수용하기보다 그 의미를 고민하고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대하는 것은 창의적 발상의 시작점이다.
본 공모전의 성격상 글의 내용이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겠지만 새로운 청와대가 특정 정치적 성향을 반영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 촛불과 광장으로 반복되는 여러 제안은
과연 편파적인 정치적 성향들을 초월할 수 있을까? 이와 달리 대통령이라는 제도에 대한 고민과 현재의 정치적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제고가 선행된 작업이 눈에 띄었다. 대(大)통령에서 국민을 대신하는 대(代)통령으로 재정의한 글과 같이 대통령이라는 제도의 의미를 되새기는 글들이나, 모든 국민이 대통령일 경우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고찰을 제시한 글들이 돋보였다.
청와대의 업무와 주거 목적보다 한국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외교적 대표성과 상징성을 중요시하는 제안들도 좋았다. 대통령이라는 개인이 아닌 국가를 대표하는 장소로서 새로운 청와대가 우리의 새로운 가치관을 반영해야 하는 것을 잘 이해하고, “시민의 정치적 자질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이 되는 정치적 극장 또는 무대의 형식을 선택한 제안들도 좋았다. 그 외에도 특정한 건물 유형과의 접목을 제안한 경우가 많았는데 그 중 도서관, 마을회관, 아파트, 또는 시장 등의 공간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려는 발상들이 있었다. 반면에 건축양식이나 디자인 요소를 통한 상징성 부여에 대한 제안들은 적었고, 대칭성을 비롯한 미학적 접근이나 규모에 대한 언급도 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는 존재가 반드시 대표성을 갖고 강조되는 것이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우리 몸의 일부가 아플 때만 그 존재감이 주목받듯이 행정부의 역할이 지극히 원활하게 돌아간다면 아마 우리는 그 존재를 망각하고 지낼 수도 있다. 또한, 제도적인 틀이 확고하여서 한 개인이 주목받지 않는 경우, 아무나 대통령이 되더라도 국가의 기능이 원활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경우, 청와대의 존재감은 과연 사라지는 것이 맞는 것일까? 대통령의 업무 수행능력보다 상징성이 지나치게 주목받을 때 대통령의 존재가 국왕과 같이 변질되는 것은 아닐까?
마지막으로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을 중요시하는 유교적 사상에 따라 청와대의 각 요소에 담긴 의미나 무형적인 요소들을 부각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 시대의 건축적 형태는 이념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고 특정한 양식이나 형태의 선택은 설계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이론과 역사적 맥락에 얽혀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1차 결과물의 글에 담긴 내용만큼 2차 결과물의 이미지들 또한 중요하다. 시각적인 이미지들을 쉽게 연상시키는 글들이 유용한 이유다.
건축가가 글을 쓴다는 것은 상상 속의 건축물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글 자체가 결과물일 수 없다. 건축가의 머릿속에 그려진 그림들을 말로 설명하는 것이고 언어를 통해 이미지가 완성되는 것이다. “저항의 발판”이라는 표현을 예로 들면 광화문광장 아래 지하화된 청와대의 이미지가 바로 연상된다. 그러나 지하에 단순히 건물을 묻는 행위는 온전히 내부화된 지하 공간의 적극적인 공간 연출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광장에서 광장시장으로, 연못에서 12 연가로, 또는 단순한 동네가 아닌 잔치를 벌이는 동네로 선명하게 묘사된 글 속의 청와대를 마주하며 2차 결과물들에 대해 기대가 크다. 이제 너/나/우리 등의 일반적인 언어에 집착하기보다 언어와 이미지, 개념과 공간의 적극적인 연계를 통해 신문고나 기와 등의 물린 요소들을 버리고, 소통, 개방 등의 무의미한 단어들을 지우고, 특정한 건축적 가능성을 담은 시각적인 언어들을 더 많이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