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청와대
Our Village, Cheong Wa Dae

정림학생건축상 2018

청와대 이전 논의가 시작됐다. <정림학생건축상 2018>은 우리 동네의 청와대를 상상한다. 우리 동네 한 켠에 있는 청와대를 상상한다는 것은 대통령의 주거 공간과 사무실이 닫힌 공간을 넘어 국가적 의사결정의 중추기관이 우리 도시에 어떤 방식으로 접목되고, 지역사회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아야 하는지 묻는 작업이다.

그동안 청와대는 국가적 권력을 상징하는 외딴 섬이었다. 청와대 역시 누군가의 동네의 부분일 수밖에 없지만, 그 누구의 동네에도 속하지 않았다. 대통령과 1천 명의 직원들이 함께 일하고 다양한 국가 공동체의 행사를 여는 하나의 마을이지만, 현재의 청와대는 주변과 철저하게 단절된 거대한 요새이다. 국가의 상징적 공간이자 권력의 중심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장소에 담긴 일상의 삶이 주변과 자연스럽게 섞이지 못하고 있다.

이번 <정림학생건축상 2018>은 청와대가 국가의 상징성과 권력분산의 필요성, 정책 결정의 효율성, 참여형 정책의 공론화, 대통령 경호와 대민복지 그리고 지역 문화와 경제 활성화 가능성까지 포함한 제안들을 모아볼 것이다. 다양한 실험적 제안이 가능하지만, 현대 도시의 맥락 속에서 청와대 입지와 경계, 규모와 운영방식 측면에서 보편타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또한, 새로운 청와대는 인근 지역 커뮤니티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 도시 공간적 측면도 살펴봐야 한다.

건축적 형태는 용도와 주변 환경 등 물리적 조건을 고려하는 것을 넘어, 상징성과 역사성을 담은 풍부한 상상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역사적 근거와 문학적 상상력에 기반을 둔 형태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의 정체성을 표현해야 한다. 전통양식의 무의미한 적용, 또는 시대성을 빌미로 한 모더니즘의 과용과 오용을 지양하고, 깊이 있는 문화적 이해를 바탕으로 추상적 의미가 담긴 형태를 기대한다.

<정림학생건축상 2018>은 ‘우리 동네, 청와대’ 작업을 통해 시민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누구나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고 주변 지역과 긴밀하게 연계된 공공 공간이자 업무시설인 새로운 청와대를 상상하는 것은 그동안 잊고 있던 우리의 권리를 다시 찾는 일이자 의무이기 때문이다.

행위의 건축, 건축의 행위

청와대 조직의 수많은 기능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소통이라는 막연한 목적을 위해, 단순화된 평면 계획에 집중하는 것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는 ‘행위의 공간’을 조정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배려와 공감의 마을

청와대는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방문자가 친근함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새로운 마을을 구현하는 장소인 청와대에서 밀도와 규모에 대한 규제는 의미를 잃는다. 대신 모든 사용자들에게 편안하며, 편견과 차별이 배제된 환경을 추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얻는다.

도시적 관점에서의 대상지

청와대는 영역과 접근 방향을 분명하게 한정 지을 것인지, 혹은 열린 경계 속에서 네트워크 구조를 가질지 등 참신한 접근이 필요하다. 입지와 경계, 규모와 운영방식 측면에서 보편 타당한 근거를 찾고 이를 통해 지역 커뮤니티와 사회에 어떤 의미를 띄는지 도시공간적 방법을 제시한다.


심사위원

최춘웅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현재 서울에서 활동 중인 건축가이자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다. 버클리와 하버드에서 공부했고 미국과 스페인에서 실무를 익혔다. 건축가의 활동 영역을 다양한 문화 행위와 지식 생산의 분야로 확장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김영민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조경과 건축을 함께 공부했으며, 현재 서울시립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주로 건축, 도시, 조경 사이의 영역에 관심이 많으며, 공간 설계와 동시에 글을 쓰고 있다.

김세훈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로 도시설계연구실에서(Urban Studies and Design Lab) 도시 설계 이론과 스튜디오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현대 도시 공간을 변화시키는 여러 가지 힘과 도시형태의 상호작용을 탐구하고 있다.


최종 심사 결과

 대 상

  •  어디냐고 여쭤보면 '청와대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황미석, 김지원)
  • 퍼지는 마을: 경계 흐리기 (고려대학교 이광훈, 허성민, 류채린)
  • 청와대로 1번지(울산대학교 김준석, 김한규, 김채원)
  • 아파트 청와대 (단국대학교 유지웅, 홍철민, 서수정)
  • 무 궁 (동아대학교 최종은, 곽강)

입 선 

  • 유배[流配] : 흐름을 나누다 (단국대학교 임재훈, 류진영, 김승진)
  • 속보이는 방 (명지대학교 김민주, 신소진)
  • 다시-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울산대학교 구윤진, 최유진, 박경빈)
  • 청와대 1호점 (경북대학교 전준수, 박형욱, 박혜린)
  • 정치는 아무나 하나 눈이라도 마주쳐야지 (서울시립대학교 한주희, 송수헌)
  • 저잣거리_참여형 정치문화의 회복 (인하대학교 조한울)
  • 공원같은 청와대_5가지 도시적 띠를 통하여 (홍익대학교 윤승조)

 어디냐고 여쭤보면 '청와대교'

 황미석, 김지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우리는 그 일상공간을 만인의 쉼터, 일상과 일의 건널목이며 도시를 대표하는 교통 인프라인 동시에 어느 시, 어느 구, 어느 동에도 속하지 않는 한강 다리 그 중 하부 공간으로 정했다. 많은 한강 다리 중 좋은 도시 인프라를 갖춘 양화대교를 첫 시작점으로 잡았고 일상공간 속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가설 구조체와 유연한 모듈 시스템을 여러 조합으로 삽입하는 것을 계획했다.

퍼지는 마을: 경계 흐리기

이광훈, 허성민, 류채린 (고려대학교)

현재의 청와대 일대는 한국 근현대 정치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상징적인 지역이다. 역사의 흔적 위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은 점점 확장되어 도시 전체의 풍경을 변화시킬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크고 작은 도시 속의 전략들을 총 네 가지의 시간적 단계별로 나누어 제안한다. 단계적인 전략은 앞으로 한국 정치에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또한 시대의 요구에 맞게 수정되고 개선되며 이상적인 모습을 찾아갈 수 있다.

청와대로 1번지

김준석, 김한규, 김채원 (울산대학교)

'주소' 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생활의 근거가 되는 곳’이다. 청와대 역시 국민을 대변하는 장소로 ‘국민생활의 근거가 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청와대 앞 경계를 만드는 청와대로와 주변 도시난민을 내부로 끌어들여 커다란 공동체 마을로 재조성 한다. 이 마을의 중심 축인 청와대로에 덧붙여지는 자생로live, 여민로support, 북악로work를 따라 생산적 타이폴로지를 제안한다면, 청와대가 제 기능을 원활하게 수행함과 동시에 자생적 마을로써 ‘청와대로 1번지’를 이룰 것이다. 나아가 빠르게 변하는 도시구조 속 국가와 국민이 공존하는 새 주소가 될 것을 기대한다.

아파트 청와대

유지웅, 홍철민, 서수정 (단국대학교)

우리는 ‘아파트 청와대’를 제안한다. 주거는 한 나라의 문화가 반영되고 만들어지는 곳 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는 주거를 비롯하여 시대적 흐름을 함께해왔다. 또 쌓아 올린 공간에 적용된 수직 수평의 효율적 구조와 동선 시스템은 영속적 가치가 있고, 이는 아파트의 삶을 영위시킨다. 하지만 현대의 아파트는 인구감소로 인한 슬럼화 현상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무 궁

최종은, 곽강 (동아대학교)

새로운 대통령 집무실의 명칭은 ‘무궁’이다. 그 의미는 첫 번째로, 국민과 왕을 구분 지었던 공간인 ‘궁이 없다(無宮)’라는 뜻으로, 불통의 요인이었던 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두 번째는 무궁(無窮), 즉 ‘영원히 피고 또 피어서지지 않는다’ 뜻처럼 고난과 역경이 있어도 그것을 딛고 다시 나아가는 한민족의 정신을 담은 의미이다.

최종 심사평

심사위원 최춘웅


우리 동네, 청와대는 고립된 섬과 같은 현재의 청와대와 달리 독특한 상황의 설정과 평범한 장소의 재발견을 통해 주변 지역커뮤니티와 섬세하게 연계되고 일상적인 마을 풍경의 일부가 되는 친근한 청와대의 모습을 상상하며 시작되었다. 현재의 청와대에 대한 체험적인 경험이나 지식이 없는 학생들도 당당한 주체가 되어 자신에게 익숙한 마을의 일부가 되는 청와대의 모습을 기획할 수 있고 새로운 청와대가 담고자 하는 시대정신에 대해 고민할 수 있다. 이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는 권위적인 환경 속에서 불편함을 느낄 것이고, 개인보다 국가의 정체성을 담은 환경 속에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에 효율적인 공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이런 이상적인 지도자의 모습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청와대의 모습을 공유해 보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향한 정치적 궤도를 가늠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우리가 꿈꾸는 바람직한 청와대의 모습을 그려 보는 행위를 통해 서로 다른 의견들이 취합 되며 논의되는 과정이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의 변화 없이 환경의 변화가 어렵지만, 반대로 새로운 환경을 통해서 새로운 사고의 전환을 유도할 수도 있다. 따라서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기획이나 공간구성의 타당성보다, 전체적으로 장소 속에 스며들어 있는 이념적 태도와 주번 지역에 대한 배려, 그리고 마을 속에서 설정된 상황들의 적합성이 심사의 기준이 되었다. 학생들이 제안한 청와대 속에서 발견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친숙하고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을 보았고, 국민 모두가 대통령인 나라에서 추구해야 할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편 청와대가 특정한 개인이 아닌 국가 전체를 대표하는 장소로서 이제 새로운 시대의 가치관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현재 우리나라의 다양한 구성원들 모두가 주인의식을 느낄 수 있는 정부기관의 모습에 대한 광범위한 고민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마을 속으로 들어온 낯선 청와대의 모습을 담은 총 139개의 제안들은 오늘날 청년세대가 희망하는 이상적인 미래를 구상하려는 소중한 과정의 시작이며 청와대를 향한 태도와 생각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단기간에 완성되는 것 보다 긴 시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마을의 모습을 갖춰 가는 <퍼지는 마을>의 자연스러움, <청와대로 1번지>라는 주소를 주변의 도시난민들과 공유하는 상황이 내포하는 파격적인 상징성, 도시 인프라 한강 다리의 일부가 되어 말 그대로 시민과 연결되는 <청와대교>, 재개발 대신 <아파트 청와대>가 되어 평범한 아파트 생활을 공유하는 대통령의 모습, 그리고 광화문 전역에 걸쳐 나지막한 처마들로 구성된 공원의 모습을 취한 <무궁> 등 당선작들의 공통적인 태도는 겸손과 평등이 전제되어 있는 소박한 청와대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다. 이렇듯 지금과는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대통령과 국민 간의 지극히 새로운 관계를 맺고자 하는 청년들의 순수한 꿈이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 것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김영민 

건축의 의미 


모든 건축물은 의미를 갖는다. 어떤 건축가는 건축이 의미의 차원에서 비로소 성립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반대로 어떤 건축가는 애써 건축에서 의미의 차원을 없애려고도 한다. 건축가들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에 관계없이 현실에서 건축물이 교환 가치만으로 규정되는 상품이나 중성적 공간으로 존재하기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하찮은 건물이라도 그 건물은 누군가의 집이고, 직장이고, 신앙이고, 이데올로기이며,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터전이다. 그래서 모든 건축물은 의미를 갖게 된다. “우리 동네, 청와대”라는 제목이 붙은 이번 공모전에서 어쩌면 청와대에 대한 제안도, 동네에 대한 재해석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이 공모전이 예비 건축가에게 요청한 참된 과제는 청와대와 동네를 넘어서 건축이 담는 “의미”를 스스로 고민하고 규정내리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동네, 그리고 청와대는 자칫 길을 잃기 쉬운 건축의 의미라는 세계를 탐색하기 위한 동굴의 입구에 놓인 사다리 같은 것이었다. 우리 동네와 청와대라는 두 공간의 결합은 낯설게 다가온다. 우리 동네는 친근하고 일상적이고 가깝다. 청와대는 크고 멀고, 보통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공가이다. 두 상충되는 의미가 결합된 이상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저마다 다른 색과 모양을 한 보석같은 건축의 의미를 찾아왔다. 흥미로운 사실은 건축 공모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안들이 건축물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마도 올해의 공모전은 지금까지의 모든 정림학생공모전 중 가장 건축적이지 않은 공모전이었을 것이다. 반대로 이 말은 올해의 참가자들이 건축의 고전적인 경계 너머 가장 멀리까지 건축의 의미를 찾아 나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출품작들 중에서 가장 많이 보였던 제시된 접근 방식은 아마도 학생들이 우리 동네의 원형이라고 생각했을 기존의 도시 조직을 닮은 청와대를 만드는 안이었다. 본선에 올라간 열 두개의 작품 중 네 개의 작품이 단일 건물에 집중하기보다 동네와 닮은 청와대를 상상하였다. 그중에서 “퍼지는 마을: 경계 흐리기”는 모범답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기존의 청와대를 동네로 거의 완벽하게 스며들게 한 좋은 안이었다. 건축물의 설계보다 청와대가 동네로 이행하는 과정에 집중하고 도면보다는 일러스트로 쉽게 주제를 전달하는 선택적 전략이 적중했다. 반면 “청와대로 1번지”는 같은 동네 만들기의 접근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구역을 나누고 그에 맞는 건축물의 설계에 집중을 하였다. 굳이 소외된 이들을 위한 주거의 형태를 임시건물의 형태로 중심부에 배치를 해야만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건축에 담으려고 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청와대교”는 출품작중 모형, 도면, 이미지, 디테일 등 모든 요소들의 완성도가 가장 높은 안 중 하나였다. 왜 하필 청와대가 다리 아래에 놓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완벽히 설득을 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가변적인 구조와 유연한 모듈 시스템이 주는 건축적 제안과 그러한 물리적 구조가 제안하는 탈중심적이며 유목적인 청와대의 가능성이 높은 평가를 받아야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다. “무궁”을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높은 밀도의 도시 중심부에 저밀도의 건물군이 적합한가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미 소진될 대로 소진된 한국적 건축의 언어를 자신만의 현대적 건축으로 해석하였다는 점, 그리고 도시적 풍경으로서의 건축의 가능성을 가장 잘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었다. “아파트 청와대”는 가장 논쟁적인 안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이 안은 제대로 된 도면도 구체적인 공간을 이해할 모형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 안이 지닌 매력은 학생다운 충실함이 아니라 선언적 파괴력이었다. 설계안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매니패스토였다. 인구감소로 인한 아파트 문화의 종말이라는 디스토피아적 시나리오는 밝은 미래를 꿈꾸는 대다수의 안들과는 대척점에 서있었고 그 과감성 때문에 대상을 차지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입선작 중 가장 아쉬운 안은 “청와대 1호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안은 지역마다 청와대의 분점을 두는 방식의 분권형 청와대를 제안하였고 매우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기존의 도시조직을 대체하고 새롭게 제안한 건축군이 유서 깊은 대상지에 어울린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에 안타깝게 입선에 머물렀다.
건축의 의미는 공간적 대상이라는 구체적인 현실의 실체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종교의 의미는 교회나 사찰을 통해서 말을 할 수 있고 정치의 의미는 아고라나 왕궁을 통해서 성립된다. 공간은 이미 존재하는 어떤 의미를 담아내는 그릇이 아니다. 의미는 실체를 통해서 생성이 되고, 건축가에게 그 실체는 물리적 공간이다. 학생들은 우리 동네에서 그들이 찾고자하는 공동체의 의미를 만들어내었다. 청와대를 설계함으로서 그들이 누리고 싶은 민주주의의 의미를 생성하였다. 우리 동네와 청와대를 함께 고민함으로써 우리가 살아가고 싶은 더 나은 사회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상상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그려보는 행위가 아니다. 상상은 지금까지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도래할 현실의 잠재성을 현실에 구현하는 첫걸음이다. 그래서 나는 그 첫걸음을 내딛게 해준 이 공모전의 모든 참여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기쁜 마음으로 그 길을 함께 가고 싶다.

 

심사위원 김세훈


마침내 2018 정림학생건축상 작품제출과 심사가 모두 마무리되었다. 심사 당일, 최종 평가장에 입장한 12팀 총 28명 학생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오랜 시간 준비한 만큼 떨지 않고 발표를 잘 해야지, 혹은 발표할 때 새로운 청와대의 의미를 강조할까 아니면 마을 속 위상에 방점을 둘까. 이런 생각과 함께 학생들의 마음 속에는 이미 20대 1의 경쟁을 뚫고 선정작 중 하나가 되었다는 자부심과 당찬 포부도 가득했을 것이다. 다시 한번 이들의 아름다운 도전과 찬란한 성과를 축하한다. 그리고 비록 선정되진 않았지만 재기발랄한 생각을 선보인 여러 참가자에게 박수갈채를 보낸다.

여기서는 대상작에 선정된 안에 대해 짧게나마 심사의견을 남긴다.
<어디냐고 여쭤보면 ‘청와대교’> 안은 무대에 오르자마자 좌중을 압도했다. 사람 키보다 더 큰 모형을 통해 양화대교라는 물리적 인프라와 청와대라는 국가정치적 인프라가 결합하는 방식을 공간적으로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비록 제한적이지만 기존 다리 하부의 공간을 활용하면서도 새로운 청와대가 요구하는 다양한 공간 모듈에 대응하는 구조 시스템을 제안했다. 그 개념적 우수성과 이를 치밀하게 구현한 완성도가 높게 평가되었다.
<퍼지는 마을: 경계 흐리기>에서는 기존 청와대의 현재 입지를 유지하면서도 공간 개방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따라 점진적으로 그 문턱을 낮추고자 했다. 궁극적으로 청와대 공간을 시민자산화 한다는 생각, 그리고 그 과정을 시나리오를 통해 공간으로 제시한 상상력이 탁월했다.

같은 맥락에서 <청와대로 1번지>도 기존 청와대의 입지를 활용했다. 하지만 앞의 안보다 좀 더 과격한 생각이 담겨 있다. 청와대는 국민 생활의 근거지로 거듭나야 한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 이를테면 도시난민 등을 위한 공간이 청와대 깊숙이 들어온다. 불특정다수의 시민에게 청와대를 개방하는 앞의 안과 비교하여 여기서는 청와대는 시민 중에서도 “누구의 공간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아파트 청와대>는 오늘날 대표적인 주거유형 중 하나인 아파트 안으로 청와대의 공간을 도입했다.
물론 아파트 슬럼화라는 다소 모험적인 가정을 했지만, 단일 거점으로서의 청와대를 제안하기보다는 탈중심화된 청와대의 여러 조각이 주거단지와 공생하며 점차 단지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촉매제로 제안한 부분이 흥미롭다.

<무궁>은 새로운 청와대를 전통적이면서도 동시에 현대적인 공간으로 해석한 우수한 안이다. 물론 그 실현을 위해서는 세종대로 지하화와 다수의 고층오피스 건물 철거 등 어려운 작업이 요구되지만, 다른 어떤 안보다도 탈권위적 상징이자 시민적 풍경으로서의 청와대를 고민하고 공간적으로 풀어냈다.

위의 대상작뿐만 아니라 다수의 입선팀도 우리 시대 청와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한편 이렇게 좋은 이야기만 하고 심사평을 마무리하기 조금 아쉽다. 우리 동네 청와대라는 공모 이전에 건축과 도시설계는 대상지, 사람, 프로그램, 시대정신, 공간에 대한 창의적이고 합리적인 해석을 요구한다. 물론 학생 공모전에서 이러한 측면 모두를 고려하여 현실적인 안을 내라고 요구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청와대라고 하는 조직의 구성원과 그 업무 방식의 특성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측면이 전반적으로 아쉬웠다. 아마도 1차적인 경험을 할 수 없는 청와대라는 공간을 설계하다 보니 이런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공간, 모든 조직을 체험한 후 건축을 할 수는 없다.
경험도 중요하지만 경험하기 어려운 공간에 대한 건강한 상상력과 공간적 유추가 체험 부재의 빈자리를
근사하게 채워야 한다.
 

1차 심사평
(시나리오)

최춘웅

새로운 청와대를 설계하기에 앞서 대상지 선정과 장소의 성격, 그리고 용도 등의 기획을 통해 제안하고자 하는 청와대의 정체성을 우선 정립하도록 유도하는 것이1차 과제물의 목적이었다. 그림의 첫 획을 긋기에 앞서 자료와 문헌을 깊이 있게 조사하고 역사적 지식을 습득하여 설계의 근거를 마련하고, 이미지보다 먼저 글을 통해 사고의 틀을 마련하는 것은 본 공모전이 추구하는 결과물이 시각적인 화려함보다 깊이 있고 신선한 개념적 제안들을 찾고자 하기 때문이다. 공모전의 형식 또한 상세한 프로그램을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대신 참가자들이 새로운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것으로, 기획 능력이 평가의 핵심적인 대상으로 간주하며, 그림보다 글이 중요하게 간주한다. 물론 글로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시각, 조형적 아이디어들이 2차 결과물에서 추가된다면 글과 이미지의 상호보완을 통해 전체적인 의미가 완성될 것이다.

1차 과제물로 제출된 글들을 읽고 깨달은 한 가지 사실은 현재의 청와대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청와대를 직접 방문해 보았거나 경험한 적이 없고, 바깥에서라도 자세히 바라본 적이 없는 낯선 장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이나 방송을 통해 보는 이미지들 또한 어떤 감동을 주었거나 우리나라에 대한 긍지를 자극하기에 부족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거쳐 간 대통령들의 공유공간이라는 역사적 의미도 중요하지 않고, 장소에 대한 연민도 없는 것 같다. 건축 유산으로서 가치에 대한 공감도 없고, 하루빨리 철거되는 것을 보는 것이 모두의 희망인 것 같다. 몇 명의 참가자들은 현 청와대에 대한 역사적 자료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단순하게 역사적 사실들을 반복하는 대신 새로운 제안의 근거로 삼았지만, 현재의 청와대를 비판하기 위한 수단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공식화된 역사적 사실 대신 일상의 기억이나 회상을 통한 기록들은 찾을 수 없었다. 새로운 청와대가 “내일의 역사를 쌓아가는 공간”이라면 그동안 축적된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좋을까?

새로운 청와대가 단일 건물이 아닌 <마을> 또는 <동네>라는 것은 공모전에서 제시하는 몇 안 되는 요구사항 중에 하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익숙한, 각자가 살아온 마을을 선택하는 대신 많은 참가자가 광장, 특히 광화문 광장이나, 기차역, 교량, 시장 등 특정한 장소나 시설물을 선정한 경우가 많았다. 특이한 장소의 선정을 통해 청와대의 새로운 성격을 쉽게 부각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충격적이거나 강한 아이디어를 통한 독창성의 표현은 왠지 대기업 취업 면접을 대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반면에 섬세하고, 잔잔한 아이디어들이 오히려 돋보였는데 <일상>이나 <친근감>이라는 단어 대신 <우물>이나 <살롱> 등 친숙하지만 일상적인 장소를 언급하는 것이 좋았다.

많은 글에서 공통으로 언급된 몇 개의 단어들은 건축적인 연관성이 적거나, 특정한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많이 남용된 ‘소통’이라는 단어는 지극히 보편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아무런 건축/도시적 의미로 연계되지 않았고, 새로운 청와대는 소통을 위해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것도 비판 없이 모두에게 받아들여진 듯했다. 대부분의 글이 헌법의 같은 부분을 반복적으로 인용했고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 또는 타당성 또한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진 듯했다. 공모전의 제목에 사용된 단어들—우리, 마을, 두 가지는 필요 이상으로 분석되거나 큰 의미가 부여된듯 했다. 우리와 마을이라는 단어 속에 공유와 일상성이라는 맥락이 담겨 있는 것은 물론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단어나 개념도 당연하게 수용하기보다 그 의미를 고민하고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대하는 것은 창의적 발상의 시작점이다.

본 공모전의 성격상 글의 내용이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겠지만 새로운 청와대가 특정 정치적 성향을 반영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 촛불과 광장으로 반복되는 여러 제안은 과연 편파적인 정치적 성향들을 초월할 수 있을까? 이와 달리 대통령이라는 제도에 대한 고민과 현재의 정치적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제고가 선행된 작업이 눈에 띄었다. 대(大)통령에서 국민을 대신하는 대(代)통령으로 재정의한 글과 같이 대통령이라는 제도의 의미를 되새기는 글들이나, 모든 국민이 대통령일 경우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고찰을 제시한 글들이 돋보였다.

청와대의 업무와 주거 목적보다 한국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외교적 대표성과 상징성을 중요시하는 제안들도 좋았다. 대통령이라는 개인이 아닌 국가를 대표하는 장소로서 새로운 청와대가 우리의 새로운 가치관을 반영해야 하는 것을 잘 이해하고, “시민의 정치적 자질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이 되는 정치적 극장 또는 무대의 형식을 선택한 제안들도 좋았다. 그 외에도 특정한 건물 유형과의 접목을 제안한 경우가 많았는데 그 중 도서관, 마을회관, 아파트, 또는 시장 등의 공간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려는 발상들이 있었다. 반면에 건축양식이나 디자인 요소를 통한 상징성 부여에 대한 제안들은 적었고, 대칭성을 비롯한 미학적 접근이나 규모에 대한 언급도 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는 존재가 반드시 대표성을 갖고 강조되는 것이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우리 몸의 일부가 아플 때만 그 존재감이 주목받듯이 행정부의 역할이 지극히 원활하게 돌아간다면 아마 우리는 그 존재를 망각하고 지낼 수도 있다. 또한, 제도적인 틀이 확고하여서 한 개인이 주목받지 않는 경우, 아무나 대통령이 되더라도 국가의 기능이 원활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경우, 청와대의 존재감은 과연 사라지는 것이 맞는 것일까? 대통령의 업무 수행능력보다 상징성이 지나치게 주목받을 때 대통령의 존재가 국왕과 같이 변질되는 것은 아닐까?

마지막으로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을 중요시하는 유교적 사상에 따라 청와대의 각 요소에 담긴 의미나 무형적인 요소들을 부각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 시대의 건축적 형태는 이념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고 특정한 양식이나 형태의 선택은 설계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이론과 역사적 맥락에 얽혀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1차 결과물의 글에 담긴 내용만큼 2차 결과물의 이미지들 또한 중요하다. 시각적인 이미지들을 쉽게 연상시키는 글들이 유용한 이유다.

건축가가 글을 쓴다는 것은 상상 속의 건축물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글 자체가 결과물일 수 없다. 건축가의 머릿속에 그려진 그림들을 말로 설명하는 것이고 언어를 통해 이미지가 완성되는 것이다. “저항의 발판”이라는 표현을 예로 들면 광화문광장 아래 지하화된 청와대의 이미지가 바로 연상된다. 그러나 지하에 단순히 건물을 묻는 행위는 온전히 내부화된 지하 공간의 적극적인 공간 연출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광장에서 광장시장으로, 연못에서 12 연가로, 또는 단순한 동네가 아닌 잔치를 벌이는 동네로 선명하게 묘사된 글 속의 청와대를 마주하며 2차 결과물들에 대해 기대가 크다. 이제 너/나/우리 등의 일반적인 언어에 집착하기보다 언어와 이미지, 개념과 공간의 적극적인 연계를 통해 신문고나 기와 등의 물린 요소들을 버리고, 소통, 개방 등의 무의미한 단어들을 지우고, 특정한 건축적 가능성을 담은 시각적인 언어들을 더 많이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시나리오 총평 (김영민)  

설계는 특수한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미사여구로 치장된 수식어나 큰 의미 없는 개념적 술어들을 떼고 나면 설계는 결국 그림 그리기이다. 본질적으로 그림이라는 설계의 매체는 글과 다르다. 잘 써진 설계의 개념이 반드시 좋은 설계를 보장하지 않는다. 때로는 글이 설계를 방해하는 덫이 되기도 한다. 건축가는 언어의 사용 최대한 절제하고 시각적 매체로 생각을 표현하도록 훈련받는다. 그래서 나는 글로 설계를 표현해야 할 때 부딪히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글로 쓰인 설계에 대한 평가가 전혀 무의미할 수도, 한낱 선입견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글로 설계를 시작함에는 특별한 장점이 있다. 먼저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 그 생각을 언어가 강제하는 시간의 형식을 통해서 풀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반드시 타자를 전제하고 그 생각을 전달해야 한다는 것. 많은 이들은 설계를 그림으로 시작해서 그림으로 마친다. 흔히 말하는 선을 긋는 행위. 손에 배인 감각, 영감, 직관. 설계를 글의 형태로 한정함은 설계가에게 익숙해진 많은 것들을 배제해야 하는 낯섦을 의미한다.

낯섦을 의미한다. 그런데 청와대를 다시 설계하라는 요청은 반드시 이러한 낯섦을 필요로 했다. 우리가 이 기획을 통해서 끌어내고자 했던 최초의 가능성은 건축가로서의 조형적 감각, 미학적 감수성, 윤리적 소명에 있기보다는 건축을 매체로 한 건축 너머의 사유였기 때문이다.

많은 사유의 결과들이 제출되었다. 모두 합치면 75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었다. 한참을 읽다가 전부를 다 읽을 필요는 없지 않겠냐고 자문해보았다. 그런데 다 읽어 보아야 했다. 어설픈 책임감 때문은 아니었다. 설명회 날 나는 좌석의 절반도 차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바람이 거세었고 우산을 쓰고 있어도 만신창이가 되는 그런 날씨였다. 20대의 나라면 그런 설명회에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예상과는 달리 강의실의 좌석은 모두 찼었고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이들은 계단에 앉아있거나 뒤에 서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직도 왜 그렇게 많은 학생이 굳이 오지 않아도 될 설명회에 와서 자리를 가득 채웠는지 모르겠다. 최소한 분명한 사실은 그 자리에 앉아있던 얼굴들이 20대의 나보다 빛나는 지나간 나의 자화상이었으며, 그렇지 못했던 지금의 내가 아마도 나보다 나을지도 모르는 이들의 생각을 읽지 않아도 될 권리 따위는 없다는 것이었다.

251개의 글 중에는 서로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한 생각들도 있었고 그 어떠한 글과도 비슷한 데가 없는 특이한 생각들도 있었다. 많은 글에서 반복적으로 선택되는 장소가 있었다.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어오던 광화문 일대, 지금의 청와대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면서 건축가들이 마음에 품은 마을의 개념과 잘 들어맞는 종로구의 동네들이 자주 언급되었다. 그에 못지않게 앞으로 용산 공원이 들어설 용산 미군기지도 인기가 좋은 대상지였다. 가장 압도적으로 많은 선택을 받은 건축설계의 방향은 기존의 도시나 마을 조직과 유사한 형태의 건물군으로 청와대를 조성하는 접근방식이었다. 이와 함께 많은 이들이 한국성, 혹은 전통적 공간의 재해석이라는 방식을 제시했다. 이는 우리 동네라는 주제와 연관이 되어있기도 했지만, 지금의 청와대가 보여주는 한국성에 대해 비판 의식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했다. 매우 독창적인 안들도 있었다. 화성에 청와대를 옮기자는 안이 제시되었는가 하면 전국 여러 곳에 청와대를 분산하자는 안도 있었다. 노숙자를 위한 청와대에서부터 한창 쟁점이 되고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제안도 있었다. 철도 위에서 이동하는 청와대, 지하화된 청와대, 통일 이후의 청와대, 한강 다리 위의 청와대, 세포막 구조를 닮은 청와대. 내가 전혀 상상해보지 못한 청와대의 가능성이 다채로운 색의 불꽃놀이처럼 터져 나왔다.

안들의 유사성은 확실히 공모전에서 불리한 점이 있다. 많은 작품 중 소수만이 선정되는 공모전에서 유사한 안들은 주목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은 그 생각이 가장 튼튼한 공감대 위에 서 있으며, 어쩌면 가장 정답에 가까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특별함은 공모전에서 유리하게 작용한다. 일단 다른 안들과 다르기 때문에 관심을 끈다. 평범한 설계를 하는 건축가는 무능하며 남들과 다른 설계를 하는 건축가는 재능이 있다고 판단하는 암묵적이며 오래된 선입견도 여기에 일조를 한다. 그러나 특별함은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기 쉽다. 모두를 공감하게 하면서도 내 생각을 차별화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많은 경우 특별함만을 위한 특별함을 추구하게 될 때가 많다. 가장 초보적이면서도 쉬운 차별화의 방식은 보편성에서 벗어나는 것인데, 이 경우 잃게 되는 것이 너무 많다.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차별성은 아집에 가까운 일탈이 된다. 특히나 다수의 동의를 전제로 이루어진 권력을 위한 청와대라는 건물은, 그리고 모든 구성원이 공유할 수 있어야 하는 우리 동네라는 주제는 그런 일탈을 더더욱 허용하기 어렵게 만든다. 유사하다고 해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해서 좋은 것도 아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글은 아직 설계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결국 최종적인 안의 가치는 글을 포함한 설계의 모든 강력한 매체들을 통해서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글은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하다. 그러나 가능성은 분명 앞으로 구현될 결과의 출발이기에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이미 설계에 대한 글을 쓰기 순간 그 설계는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글을 읽고 장소의 선택과 설계의 방식이 좋고 나쁨을 평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글을 통해서 분명 좋고 나쁨을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장소의 선택과 설계의 방향을 결정짓는 근거, 즉 설계를 위한 사유이다. 사유의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사유의 방식이다. 많은 글이, 실상은 거의 대부분의 글이 촛불의 경험, 지난 권력의 잘못, 민주주의의 가치, 기존 청와대의 문제, 동네라는 개념적 대안을 설명하는데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였고 자신의 설계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제시하였다. 그런데 이는 지면의 낭비이다 이는 곧 사유의 낭비를 뜻한다. 왜냐하면, 주어진 질문에 대한 동어반복이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라는 주제로 어떻게 새로운 청와대를 만들까요?”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 동네라는 주제로 새로운 청와대를 만들고자 합니다.”라는 하나 마한 대답을 하는 셈이다. 도대체 왜 청와대를 다시 생각하라는 질문이 던져졌을까? 그리고 왜 우리 동네라는 말을 붙였을까? 사실 대부분이 자신의 사유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장황하게 늘어놓은 텍스트들은 질문 자체를 위한 이전의 사유의 결과였고 질문에 이미 그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는 전제들로 대부분의 글을 소진한 후에서야 정작 자신의 사유는 시작되었고, 시작되자마자 서둘러 끝나버렸다.

그렇지 않은 글이 있었다. “청와대를 우리 동네에 넣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얼핏 보면 그야말로 공모전의 주제와 동어반복처럼 보이는 이 제목의 글은 어쩌면 유일하게 주제와 동어반복이 아닌 글이었다. 우리 동네와 청와대라는 전혀 상관없다고 여겨졌던 두 공간을 병치시킨 공모전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우리 동네도, 청와대도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은 대상이 아니라 그사이의 관계를 다루고자 한다. 물론 이 글만이 청와대를 우리 동네에 넣고자 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제안은 우리 동네 같은 청와대를 만들려고 했고, 상당수는 청와대를 우리 동네에 넣고자 했다. 나는 그 내용 때문이 아니라 문제에 대한 인식과 사유의 태도 때문에 이 글이 좋았다. 수려한 문장은 아니었다. 이 글보다 훨씬 글재주가 뛰어난 글들은 많았다. 그렇게 치밀하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설익은 생각들은 얼마든지 반박할 여지 있었으며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 그렇다고 설계의 제안이 놀랍지도 않았다. 오히려 제시된 공간적 대안은 과연 그것으로 충분할까하는 의문이 들게 하였다. 그런데 이 글은 군더더기 없이 곧장 문제의 본질을 건드리고 있다. ‘우리,’ ‘동네,’ ‘청와대’라는 공모전의 제목을 이루는 세 개념을 다시 사유한다. 그 사유의 끝에서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면서 마무리한다. 일부러 많은 공백을 남겨놓은 과제의 의미를 차근차근 짚어 나아가며 그 공백에 자신의 사유를 채워 넣는다. 나는 이 글을 쓴 이가 설계까지 잘 풀어낼지는 모르겠다. 그것은 다른 영역이니까. 하지만 설계도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심사위원이라는 위치는 권력을 부여한다. 권력은 타인을 자신의 의사에 복종시키도록 인정받은 권리이다. 그 권리는 자의에 의해서이든, 타의 의해서이든 서로가 동의해야 효력을 얻는다. 건축을 통해 권력에 대해서 생각하라는 이 공모전에서 심사위원의 권리는 무엇인가? 나는 당신의 생각과, 노력과, 성과에 대해서 평가를 할 것이다.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의무이며 권리이다. 그러나 그 평가는 당신이 보여준 만큼에 대한 평가이다. 그마저도 나는 제대로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나는 당신의 전부를 알지 못한다. 나에게 당신의 가치 그 자체를 평가할 권리는 없다. 자신의 가치를 타인이 함부로 결정하게 하지 마라. 그것은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고 결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다만 타인의 견해는 나를 자아도취에서, 아집의 미몽에서 깨어나게 할 유일한 경종이다. 설령 베이는 듯한 날카로운 비판과 나를 붉게 상기시키는 기분 좋은 상찬이 나에 대한 큰 오해라 할지라도 보다 괜찮은 나를 만들게 할 유일한 경종이다. 거기까지가 당신이 나의 권리에 대해서 동의해야 할 부분이다. 그래서 상처받을 일도 우쭐해 할 일도 아니다.


김세훈

총 251팀이 제출한 1차 과제물에는 ‘우리 동네’와 ‘청와대’라는 사뭇 이질적인 성격을 엮어보고자 하는 참가자들의 지적 탐색과 고민이 잘 드러났다. 아마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청와대 이전 계획만 해도 만만치 않은 작업인데, 우리 일상적 삶의 영역 한가운데 국가권력의 핵심 기관을 왜, 그리고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라는 논리와 근거를 글로 써 내려가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런데도 상당수의 참가자가 공모전 취지를 잘 파악하고 정면 돌파했다는 점에서 박수갈채를 보낸다. 차이는 있지만, 청와대를 소통과 참여의 동네 거점으로 제시한 안의 큰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현재 청와대의 입지와 공간적 구조는 국가 운영에 시민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정책결정자는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있고, ‘그들만의 리그’를 통해 임명된 공무원들은 일에 치여 안타깝게도 시민주권 실천을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이제 청와대를 시민사회의 품속에 제대로 복원하자. 바로 여기에 ‘동네’의 잠재력이 있다. 동네는 친숙하고 편안한 곳이다. 누구나 불편하거나 개선될 일을 이야기할 수 있고 누구든 여기에 공감하거나 또 다른 의견을 낼 수 있다. 일부 참가자는 동네와 관련된 구체적인 공간도 포함했다. 마당, 골목길, 사랑방과 함께 주민 거점 공간, 미용실, 빨래방, 문방구도 그 예다. 이를 중심으로 청와대의 서로 다른 영역을 엮어주고 시민들의 일상적 이야기가 안팎으로 편안하게 흐르도록 하자. 이를 통해 앞으로의 청와대는 수직적, 권위주의적 이미지를 탈피하고 시민사회와 주민자치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이러한 접근을 선택한 경우 풀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청와대와 시민사회는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소통하고 교감하는가? 국가정책에 대한 주민참여를 유도한다는 명분으로 청와대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은 늘 옳은가? 어디까지가 공간의 문제이고, 어디까지가 정책과 시스템의 문제인가? 나아가 동네 공간인 마당과 골목길은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한가? 조언하자면, ‘동네’라는 단어가 풍기는 낭만적 분위기에 취해 그 가능성을 확대하여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또한, 동네의 아름답지만은 않은 현실을 냉철하게 되돌아보는 일도 필요하다. 이를테면 다수의 국내 저층 주거지에서 편안해 보이는 동네 일상은 불법 주차, 쓰레기 무단투기, 겨울철 수도 동파 혹은 불특정 외부인과 다툼으로 인해 종종 파괴되곤 한다. 일부 학교 주변 어린이보호구역에서는 유흥주점 밀집 지구와 범죄 사각지대가 공존하고 있고, 많은 도시재생 사업지에서는 주민참여를 통한 계획 수립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실제 주민협의체에 참여해 계획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일은 전체 거주자 수의 1~2%에 해당하는 주민만이 하고 있다. 각종 문제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곳, 그리고 지역 문제 해결이라는 난제에 대해 대다수 주민이 외면하는 동네의 현실 속에서 소통과 교감의 가능성과 그 한계는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일부 참가자는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청와대와 국가권력의 시간성에 주목했다. 그중 일부는 지난 정부의 비극적 폐쇄성을 문제로 바라본다. 왜 지난 여러 정권에서 청와대와 그 주변은 불통과 권위의 상징이 되었을까? 과연 새로운 청와대는 이러한 구습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보다 수평적이고 열려 있는 청와대를 시간의 관점에서 꿈꾸는 작업은 다양한 형식으로 전개될 수 있다. 어떤 참가자는 시간적 병치 전략을 선택했다. 과거의 청와대가 불완전했던 점은 분명하지만, 그러한 과거를 없애버리면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울 기회가 그만큼 사라진다. 따라서 과거의 폐쇄적 청와대 공간을 흔적처럼 보존하고, 개방과 소통의 신-청와대 공간을 그 위에 새로운 지층처럼 얹어 놓는다. 이를 통해 청와대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은 과거와 오늘날의 청와대가 얼마나 어떻게 다르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떠올린다. 이러한 접근과는 달리, 전혀 새로운 미래의 기술로 중무장한 청와대를 제안한 참가자도 있다. 이에 따르면 과거의 고리를 끊는 작업은 순수한 건축 형태로 구현되기 어렵다. 그보다는 신기술로 말미암아 가능한 정치참여 방식과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을 도입함으로써 가능하다. 따라서 새로운 청와대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집합적으로 결정하는 최신 민주주의 시스템의 공간적 구현이다. 이렇게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고리로서 새로운 청와대를 바라보는 관점은 무척 신선하다. 한발 더 나아간 안도 있다. 왜 우리의 청와대는 한 번 만들어지면 한 장소에 고착되어야 하는가? 선출된 대통령의 임기에 다뤄야 할 주요 사회문제 현안에 따라 5~10년 주기로 새로운 청와대가 조성되고 지난 청와대는 소멸할 수 없을까. 시대 변화에 발맞추어 최소한의 시설과 사람이 이동하고 새로운 거점을 찾는 유목민적 청와대를 꿈꾸는 제안이다.

이러한 시간성보다는 대상지의 위치와 공간적 맥락에 집중한 안도 있다. 과연 국가적 정책 결정을 위한 의사소통은 어떤 입지와 장소에서 잘 이루어질 수 있는가? 적정 규모의 청와대는 무엇이고 그 행정 업무의 효율성 증가는 어떤 공간을 요구하는가? 청와대 주변에는 어떤 행정 서비스나 문화시설이 존재해야 할까? 이 중 다양한 근무자와 방문객의 접근성을 우선 고려한 안은 육상교통과 하늘길이 교차하는 곳에 청와대 입지를 제안했다. 이렇게 새로운 청와대가 자리 잡는데 필요한 여러 공간 조건을 섬세하게 따진 안도 있고, 반대로 청와대가 들어서면 주변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 다양한 변화에 열려 있는 장소를 추구한 안도 있다. 과거의 청와대가 풍수지리적 명당을 찾아 위치했다면, 새로운 청와대는 명당이 아닌 곳을 명당으로 바꾸는 진보적 제안이랄까. 이와 함께 대상지와 관련하여 ‘동네’의 의미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안도 있었다. 과연 이 시대에 동네란 무엇인가? 여러 사람이 더불어 거주하며 평화로운 일상이 펼쳐지는 곳만 우리 동네가 아니다. 이러한 생각을 한 참가자에 따르면 다수의 시민이 출퇴근을 위해 매일 지나가야 하는 한강 다리도 우리 동네다. 혹은 통일 이후의 한반도를 생각하면 국토 중앙부에 위치한 오늘날의 비무장지대(실은 중무장지대에 더 가깝다)도 미래의 우리 동네라 볼 수 있다. 이렇게 동네의 영역을 더 확대해보면 청와대가 위치할 수 있는 대상지는 무궁무진하다.

학생 공모전의 특성상 공모의 취지만 잘 파악하면 대상지 선정이나 프로그램 구성 등에 있어 매우 큰 자유가 주어진다. 모든 참가자가 이러한 자유를 충분히 만끽하길 바란다. 이번 공모전은 허구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과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지점이 있다. 이는 우리 시대, 한국이라는 시•공간적 현실을 참가자의 상상력과 촘촘하게 이어가는 부분이다. 국가 최고 정책결정자와 그 팀이 일하고 거주해야 하는 공간은 어떤 특질을 가져야 하는가? 이 공간은 어떤 종류의 내부완결성과 함께 주변 도시조직과 어떻게 연계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청와대의 입지와 함께 그 주변 지역은 어떤 변화가 예상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논리적이고 보편타당한 근거로 답을 해야 하고, 이를 공간적으로 명쾌하게 구현해야 한다. 참가자들의 건투를 빈다.


주제 설명회

정림학생건축상 2018 주제설명회 현장 동영상입니다.

전체 일정

  • 참가신청: 2017. 9.1.~ 2018. 1.12. 
  • 주제 설명회: 2017. 11. 25. @정림건축B2정림홀(예정)
  • 1단계 과제 제출(시나리오): 2018. 2. 5.~2. 7.
  • 2단계 과제 제출 (상세 계획안): 2018. 3. 5.~3. 7
  • 공개심사 진출자 발표: 2018. 3. 19.
  • 공개심사 및 시상: 2018. 3.24. 토요일 오후 1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