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도서관> 심사 참여는 행운이었습니다. 흥미진진하면서도 설득력있는 작업들에 연신 감탄했고, 도서관 현장에서 바라던 일들이 현실로 구현되겠다는 설렘으로 선물을 받는 것만 같았습니다. 먼저, 편집 디자인부터 설계를 글로 풀어낸 문학적 서사에 드로잉, 제본까지, 책으로 엮은 작품들의 수준에 압도되었습니다. <In Bloom> 같은 작품들을 보면서, 도서관에서 건축분야 자료를 ‘기술과학’으로 분류할지 ‘예술’ 코너에 둘지 고민하던 까닭을 알 것 같았지요.
더 놀랍고 반가운 건 도서관의 역할에 대한 단단한 문제의식과 사유의 깊이였습니다. 매체의 발달과 사회 전반에 걸친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 팬데믹 상황까지 겹치면서 어느 때보다 가파른 변화의 요구에 맞닥뜨린 도서관들의 고민을 건축학도들의 작품에서 오롯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축적과 저장에서 활용과 창작으로, 정보의 수용자에서 생산자로의 변화를 지향하며 탐구한 과정들은 지식을 서고에서 꺼내 일상의 삶 속에서 작동하도록 만들 방법을 찾는 도서관 현장에 자극과 영감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과 변화, 공유와 사유의 경계, 상호작용과 몰입처럼 묵직한 질문으로 출발한 다수의 참가자들은 유연함과 확장, 열림과 포용, 분산과 융합 같은 키워드들을 건져올려 도서관이 무엇이어야 하고 무엇일 수 있는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구체화시켜 주었습니다. 갈수록 도서관에서 몫이 커지는 아카이브에 주목한 작업이 많았던 점도 반가웠습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이 공모전에 생기를 불어 넣었습니다. 자율주행 도래에 따른 교차로의 변화에 착안해 ‘도심 속 0원 대지’라는 유쾌한 베팅까지 시도한 <유령 도서관>의 모빌리티 유닛, 집의 거실과 도서관 열람실을 절묘하게 접속시킨 <Living Library>, 책이 공간을 가로질러 흐르면서 우연한 만남을 빚어내도록 고안한 <도서관 편집자>의 책배관, 책자 형태를 요구한 공모전의 조건을 ‘잡지’로 풀어내는 동시에, 끊임없이 변화하는 일상의 필요에 반응해야 지속가능하다는 것을 ‘월간’이라는 개념으로 은유한 <월간 도서관> 등은 수 년 내에 꼭 마주하게 될 어느 도서관의 시뮬레이션 같았습니다.
사이트 선정 과정에서도 사유의 밀도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로 지역을 해석하고, 과감하면서도 공감되는 원칙들을 세워 사이트를 선정한 <Living Library>는 도서관을 계획하는 데 유용한 실마리들을 제공했습니다. 접근성만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까지 조사해 지금 그곳에 깃들인 사람들의 관계망을 매개하고자 한 <1분 미리듣기>, <한 걸음만 내디디면 책이 있다> 같은 작업들은 ‘고객개발’을 고민하는 도서관들에게 의미있는 인사이트를 줄 것이라 여겨졌습니다. 공원일몰제에 착안한 <Media Park>는 여러 지자체에서 채용할 만한 정책대안으로 보였고, 핫플레이스를 새로운 시선으로 변신시킨 <수열이 지배하는 공간>은 당장 시공하면 좋겠다는 욕심이 들게 했습니다.
아쉬움이라기보다는 희망사항을 덧붙인다면, 도서관의 일상에서 실재하고 또 일어날 수 있는 역동이 좀 더 구체적으로 고려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연겨푸 제시된 지식의 순환과 생산, 다양한 사람들의 교류와 협업을 실제로 북돋울 수 있도록 자료의 배치와 관리, 동선 계획 등 도서관 이용과 서비스에 필요한 요소들을 보완하여 발전시키는 아이데이션 과정을 기대합니다. 그럴 수 있도록, 공모전을 ‘발제’ 삼아 건축학도들과 사서들이 함께하는 토론과 스터디가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그 만남은 낮의 도서관을 지배했던 ‘질서’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사위가 어둑해진 ‘밤의 도서관’에서 열어봐도 좋겠습니다.
수상작 선정을 곤혹스럽게 만든 작품들이 아까워 도서관에서 전시를 하고 싶다고 청했습니다. 흔쾌히 허락해주신 재단에 감사드리며, 건축학도와 사서, 시민들의 만남에 마중물이 되기를 바라 봅니다. 기량만 겨루는 공모전이 아니라, 선후배들이 경험과 지혜를 나누며 함께 주제를 탐구하고 성장하는 과정으로 설계한 정림학생건축상의 시스템, 도면 대신 책이라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내주신 기획자님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이 무력한 기성세대의 청년들에 대한 걱정과 안쓰러움을 믿음과 기대로 바꿔준 모든 참가자들께 힘찬 응원을 전합니다.
느티나무도서관 박영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