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은 더 이상 남의 일이거나, 일생에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사건이 아니다. 이미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인 형태로 도처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재난의 심각성에는 갈수록 무감해져 잠정적으로 더욱 큰 재난을 키우고 있다.
『위험사회: 새로운 근대성을 향하여』의 저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한국이 길지 않은 50년 동안 압축 성장을 하면서 그 부작용으로 과거형과 미래형의 사회가 공존한다고 보고 여러 문제들을 염려한 바 있다. 다시 말해, 근대성의 말미에서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과거형 사회와 환경문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이 경제발전 과정에서 발생한 미래형 사회가 동시에 나타나 이중으로 위험한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 재난까지 겹친다면 더 이상의 구제를 바랄 수 없는 사회가 될 것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지난 재난의 역사를 돌이켜 보건대, 오히려 폐허 속에서도 상호부조相互扶助의 공동체적 유대가 발휘되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이번 정림학생건축상에서 제시하는 재난은 크게 두 가지의 의의를 지닌다. 첫째, 재난의 상황을 가정함으로써 개인과 공동체, 환경과 건축에 대한 더욱 본질적인 물음에 직면할 수 있다. 둘째, 재난이라는 극한 사회적 환경 (하지만 실제 일상이 되어버린 현상)에 직면한 건축가는 어떻게 최소한의 건축적 환경을 구축할 수 있으며, 능동적으로 사회 질서에 기여할 수 있는지, 본연의 역할과 행위는 무엇인지를 고민할 수 있다. 재난을 통한 건축적 성찰은 오늘날 우리 모두가 공통으로 겪는 도시생활 문제를 포섭하는 것으로, 건축을 넘어선 학제간 접근과 해결을 기대한다.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와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도시 디자인 전공으로 학·석사를 취득했다. 정림건축에서 실무를 익힌 후, 1995년 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여 활동 중이다. 현대 목구조 작업을 중심으로 기하학과 구축술을 포섭하며 사회적, 환경적 관계를 조정하는 새로운 건축 유형에 관심이 있다. 건축가협회 올해의 BEST 7 작품상 (2004, 2006, 2011, 2013), 서울특별시건축상 (2012, 2013), 교보생명 환경대상 (2010) 등을 수상했으며, 최근 작업한 <구축적 공간체>는 광주아시아문화전당에서 전시 및 소장하고 있다.
중앙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와 위스콘신대학교에서 영문학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계간지 <문화과학> 편집위원과 <한겨레> 토요판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중앙대학교와 연세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파국’, ‘재난’, ‘광신’, ‘괴물’ 등 현재의 질서와 불화하는 이질적 담론을 바탕으로 한 문화 텍스트 분석과 한국 사회의 작동 방식을 탐구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주요 저서로 『파국의 지형학』 (자음과모음, 2011),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 (이매진, 2012)가 있고, 『광신: 어느 저주받은 개념의 계보학』 (알베르토 토스카노 작, 후마니타스, 2013) 등을 번역했다.